작년 미국에서는 미식축구 리그 NFL에 두 명의 거물 신인 쿼터백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로버트 그리핀 3세와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앤드류 럭이 그 주인공이다. 시즌 초반 그리핀의 기록은 가히 경이로웠다. 패스성공률이 70.4%에 달했고, 평균 패스거리가 8.5야드에 이르렀다. 신인쿼터백으로 과거 70년이 넘도록 깨지지 않았던 신기록이었다.
기록면에서 단연 선두였던 그리핀에 비해 럭의 패스성공률은 53.6%로 32위에 머물렀고, 평균패스거리는 고작 6.7야드로 25위에 지나지 않았다.
전통적 기록에 빅데이터 적용하면...”선수 평가가 달라진다”
그러나 미국 스포츠전문채널 ESPN의 평가는 달랐다. NFL 전체 쿼터백 가운데 럭을 6위, 그리핀을 그보다 아래인 8위로 평가했다. ESPN의 평가에는 보다 정밀한 데이터가 적용됐다. ESPN이 운영하는 ‘토털 QBR’이라는 데이터 분석 시스템으로 분석한 결과 럭이 던진 패스는 상대편 수비벽으로부터 평균 10.2야드를 날아가 적진 깊숙히 침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비해 그리핀은 패스 거리는 길었지만 수비벽으로부터는 불과 5.8야드 밖에 날아가지 못했다. 럭이 훨씬 위험한 상황에서 패스를 시도했으며, 게다가 콜츠의 감독은 장거리 패스를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요인까지 반영됐다. 결국 겉으로 보이는 데이터 수준을 넘어서서 정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하면 선수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스포츠에 빅 데이터가 적용되면 경기를 하는 선수나 선수를 지도하는 코치나 경기를 보는 팬들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린다. 지난 6월 테니스팬들을 뜨겁게 달궜던 프랑스 오픈 테니스대회에서는 빅데이터도 함께 경기를 치뤘다.
IBM이 개발한 ‘슬램트래커(SlamTracker)’라는 테니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은 지난 8년 동안의 그랜드슬램 테니스대회의 경기 데이터를 수집해 미리 분석해뒀다. 한 경기 당 발생하는 데이터만 무려 4천1백만건에 달했다. 이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각 선수들의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3대 핵심전략을 찾아내 정리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팬들은 웹사이트를 찾아 그 경기에서 눈여겨 봐야 할 선수들의 핵심전략을 미리 살펴본다. 경기가 시작되면 경기 중에 발생하는 데이터를 이용해 그 선수가 핵심전략에 잘 대응하고 있는지, 아니면 어디를 잘못하고 있는 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최근 조선일보는 지난 1월 호주오픈 남자단식 결승전을 두고 활약했던 슬램트래커 이야기를 소개했다. 당시 결승전에서는 노바 조코비치와 앤디 머레이가 맞붙었다. 슬램트래커는 두 선수의 습관과 경기데이터를 분석해 조코비치가 머레이를 이길 수 있는 세가지 조건을 내놓았다. 그 중 조코비치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켰다. 그러나 머레이는 단 한 가지 조건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결과는 조코비치의 우승.
IBM은 작년 8월 US오픈테니스대회 당시 빅데이터 분석을 처음 소개했다. 당시 IBM 관계자는 ‘슬램트래커'의 구조를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서 설명했다.
“가운데에 있는 주요 모듈은 진행 중인 경기를 나타냅니다.
위쪽에는 비너스 윌리엄즈가 애쉬코트에서 경기하는 데이터가 보입니다.
현재 경기 스코어와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지요.
지금 비너스는 두번째 게임 1세트에서 동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짜 재미있는 부분은 이 아래쪽입니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포인트가 올라가면 이 시스템은 데이터를 수집해서 알아보기 쉬운 비주얼한 방식으로 분석결과를 보여줍니다.”
“스포츠, 이젠 수학으로 설명돼"
팬들만이 아니다. 코치는 경기 중에 실시간 분석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라운드의 전략을 수정한다. 또한 중계방송 해설자는 이 실시간 분석정보를 이용해 더욱 정확하고 재미있는 해설이 가능해진다. 심지어 대회 기간 중에 발생한 트위터나 페이스북 포스팅을 분석해서 마케팅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테니스선수가 플레이 하나를 할 때마다 데이터가 쏟아져나오고, 이 데이터가 또다른 스포츠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됐다.
프랑스오픈 대회 현장에서 진행된 좌담회에서 비너스 윌리엄즈와 조를 이뤄 혼합복식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 테니스선수 출신으로 ‘테니스 채널' 해설자 저스팅 기멜스토브씨는 이렇게 말한다.
“야구나 농구, 미식축구와 같은 엘리트 스포츠는 점점 높은 수준의 알고리즘으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스포츠 경기가 수학으로 설명되고 있지요."
테니스 뿐 아니다. 농구나 축구 경기에도 빅데이터가 활용되고 있다. 미국 프로농구 NBA 리그에서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분석한다. 선수의 드리블 횟수, 이동 경로, 볼 보유시간, 리바운드 횟수 등 데이터를 집계해 거의 실시간으로 분석결과를 보여준다. ‘SportVU’이라는 시스템의 분석결과를 태블릿PC로 받아보면서 코칭 스탭은 경기가 진행 중인 가운데 작전을 수정하고 전략을 수립한다.
유명한 유럽축구선수권대회 UEFA 경기에서도 빅데이터가 작동하고 있다. 감독은 양팀 선수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잡아낸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군이 미사일 추적을 위해 개발한 광학인식 기술이 적용됐다. ‘히트맵(heat map)’으로 표시해 자기 팀과 상대 팀의 약점과 강점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지시를 내린다. 한다. 마치 장기판에서 장기를 두듯 실시간 분석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선수들을 움직이는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IBM의 ‘슬램트래커'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보다 높은 수준의 분석결과를 뛰어난 기획자들에게 넘겨줘서 각 데이터를 서로 연결시키고 훨씬 더 흥미로운 방법으로 시각화시킴으로써 보다 향상된 인터페이스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현대 스포츠는 기록의 경기라고 한다. 기록은 데이터가 만들어낸다. 관중 연 6백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우리 프로야구에서도 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이 가동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포츠와 빅데이터 기술의 만남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