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디지털정보 분석·활용 능력이 마케팅 성패 좌우]
필립스, 이유식 제조기 안 팔리자 육아 블로그 1억4000만개 뒤져 원인 찾아내… 1위 탈환 성공
브리티시에어웨이, 고객 분석 '프리미엄 이코노미' 만들어 대박
올해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식 행사는 디지털 시대에 세상이 얼마나 크게 변했는지를 보여줬다. 수많은 사람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들고 행사를 촬영해 자신의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 올렸다. 8년 전인 2005년 베네딕토 교황 취임식 때는 사람들이 조용히 취임사를 들었지만 이제는 자신만의 채널을 통해 세상에 새 교황의 목소리를 전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어떤 정보라도 직접 디지털화해 세상으로 내보낸다.
이런 디지털 정보가 기업 마케팅에 큰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디지털 시대 소비자들이 만들어 내는 방대한 정보, 이른바 빅 데이터(Big Data)를 분석해 마케팅에 활용해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 느는 것이다.
2009년 필립스전자가 처음 출시한 이유식 제조기는 한동안 없어서 못 파는 제품이었다. 집에서 이유식을 만들려면 1시간 이상 재료를 다지고 끓이고 체로 걸러야 한다. 재료만 집어넣으면 이유식이 나오는 제조기는 엄마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년 후 판매량이 급락했다. 회사 내부에선 저가 유사 제품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제품을 많이 팔려면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필립스는 판매가 급감한 이유를 찾기 위해 육아 관련 블로그 1억4000만개, 육아 관련 사이트 36개 게시판 등을 뒤졌다. 이른바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 판매 부진의 원인을 분석한 것이다. 결론은 가격이나 품질이 아니라 주부들이 이유식을 배달받아 아이들에게 먹이기 때문이란 것. 필립스는 제품 가격을 내리는 대신 광고 메시지를 바꿨다. '엄마가 직접 만들어 먹이는 사랑이 담긴 이유식'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6개월 후 필립스 이유식 제조기는 다시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영국 항공사인 브리티시에어웨이(British Airways)는 4~5년 전 이른바 워 게임(war game)을 실시했다. 브리티시에어웨이가 항공편 가격을 올리거나 내릴 때 경쟁 항공사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시뮬레이션해 본 것이다. 또 고객의 자산 규모, 연간 비행편 이용 시간 등 필요한 모든 정보를 모아 수익을 더 낼 방법을 찾았다. 그 결과가 바로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이다.
보통 비행기 좌석은 이코노미와 비즈니스, 퍼스트클래스로 나뉜다. 그러나 브리티시에어웨이는 이코노미석과 비즈니스석 중간인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을 만들었다. 당시 워 게임에 참여했던 와튼 스쿨 데이비드 레이브스타인 교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빅 데이터 작업이었다"며 "브리티시에어웨이는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으로 수천억원 이익을 봤다"고 말했다.
미국 온라인 DVD 대여업체인 넷플릭스는 이용자의 영화 대여 목록 데이터를 분석해 볼만한 영화를 추천해주는 시네매치(Cinematch) 시스템을 개발했다. 고객 1600만명의 과거 시청 정보를 분석해 만든 영화 추천 시스템이다. 넷플릭스와 넷플릭스 고객 모두 수많은 사람의 시청 정보를 분석해 만든 시스템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넷플릭스 고객의 60%가 시네매치 추천 콘텐츠를 이용한다. 당연히 넷플릭스의 수익도 늘어난다.
국내 기업들도 본격적으로 빅 데이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업체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 미디어솔루션센터(MSC)는 스마트폰이나 스마트TV 사용자들이 남긴 엄청난 양의 정보를 분석해 지역별·연령별·시간대별로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미리 파악해 내놓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작년 삼성전자가 판매한 스마트폰 숫자는 2억5000만대. 올해는 4억대 이상을 판매할 전망이다. MSC 홍원표 사장은 "소비자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직접 물어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수많은 스마트 단말기에서 나오는 빅 데이터를 분석해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20일 열리는 '2013 글로벌 디지털 마케팅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할 예정인 레이브스타인 교수는 "수많은 온라인 정보와 방대한 내부 고객 정보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능력, 즉 빅 데이터 분석 활용 능력이 향후 기업 마케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