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에서 `골드러시` 열풍이 분 것은 18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금을 캐내 부자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막 금광이 발견된 미 서부 캘리포니아 `엘도라도`를 찾아 거친 사내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막상 이들 중 부자가 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돈을 번 사람들은 빠른 장삿속을 굴려 광산 일에 필요한 청바지와 곡괭이를 팔았던 일부 상인들이었다. 세계 최대 청바지 업체 `리바이스` 역사도 바로 이때 시작한다.
`디지털 엘도라도`로 불리는 빅데이터 시장이 열리면서 미국 서부 160년 전 역사가 한국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빅데이터 구현에 꼭 필요한 `저장장치(스토리지)` 시장을 놓고 외산 업체끼리 한바탕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뉴타닉스, 바이올린메모리, VM웨어, 님블스토리지 등 실리콘밸리에서 인정받은 첨단업체들이 한국 시장에서 곡괭이를 팔겠다고 나섰다.
빅데이터는 한 그릇에 담긴 잡다한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끄집어내는 게 핵심이다. 예전에는 쓰레기통에 던졌을 법한 의미 없는 자료에서도 얼마든지 돈이 되는 알짜 정보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에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하는 스토리지 수요가 날로 늘고 있는 것이다.
해가 갈수록 급증하는 데이터 생산량도 저장장치 수요 그래프를 위로 밀어올리고 있다. 시스코에 따르면 지난해 2.5제타바이트(ZB) 수준이었던 전 세계 데이터센터 트래픽(주고받은 이용량)은 2017년 7.7 ZB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해에 107조 시간 동안 음악 스트리밍을 듣는 것과 동일한 데이터가 새로 생겨난다는 얘기다.
김기철 한국정보산업연합회 상무는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 확대가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IDC 분석에 따르면 올해 4812억원으로 추산되는 한국 스토리지 시장은 2017년 6286억원까지 성장한다.
실리콘밸리 업체들이 한국 시장 진출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국내 시장에 공식 진출한 뉴타닉스는 구글 출신 엔지니어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로 유명하다.
VM웨어는 데이터센터를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솔루션을 내걸고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윤성 VM웨어코리아 부장은 "저장장치 효율성을 최대한으로 올릴 수 있어 데이터 관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광에 비유하면 곡괭이 성능을 높이는 업그레이드 솔루션을 내놓는 식이다.
5월 지사를 설립한 바이올린메모리는 이미 한국거래소(KRX)와 거래 실적이 있다. 내년 초에는 매년 400%씩 성장세를 기록 중인 님블스토리지가 한국 시장을 두드린다.
이에 반해 한국 업체 대응은 상당히 늦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IDC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토리지 시장 점유율은 한국EMC 42.2%, 히타치 21%, 한국IBM이 10.9% 선으로 국내 업체 리스트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EMC 등 글로벌 스토리지 업체들이 규모의 경제와 축적된 기술력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 몇몇 업체들이 빅데이터 솔루션을 내놓고 있지만 스토리지 시장과는 궤가 다르다는 분석이다. 업체 중 상당수가 아직 시장이 본격 열리지 않은 소프트웨어 시장 공략에만 치중하고 있다.
최근 한국 시장 진출을 선언한 퓨어스토리지 향배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이 업체는 삼성벤처캐피털에서 투자를 받아 화제가 된 바 있다. 퓨어스토리지 미국 본사 차원의 사업 확장을 통해 삼성전자 등 계열사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