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날마다 47억5000만 개의 게시물이 공유되고, 45억 건의 ‘좋아요’와 댓글이 생겨난다. 페이스북은 이를 분석해 사용자의 관심사와 현재 상황, 소속 등을 파악해 맞춤 정보를 제시하고 연관 광고를 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에 활용한다. 아마존은 모든 고객의 구매 내역을 분석해 소비자의 소비 취향과 관심사를 파악한 다음 개인별로 ‘추천 상품’을 표시한다. 구글 역시 사용자들의 검색 내용을 분석해 연관 광고를 게시한다. 페이스북에서 동남아 여행 관련 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구글에서 여행지 정보를 검색하면 해당 지역의 호텔·항공편 광고가 뜨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모두 빅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개인의 사전 동의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국내법에서는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개인정보 규제가 빅데이터 산업의 성장을 막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의미 있는 새로운 정보를 만드는 빅데이터는 차세대 정보기술(IT)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규제 탓에 활성화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18일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세계 빅데이터 시장은 지난해 68억 달러에서 2015년 169억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주요 기업·공공기관이 맞춤형 제품 개발, 범죄 감시, 재난 예측 등에 활용하는 등 빅데이터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성과가 미진하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주요 선진국은 부가가치 창출을 기대하고 육성하고 있다”며 “선진국에 비해 까다로운 국내 규제가 산업의 성장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SK텔레콤은 지난달 가입자들의 통화내역과 멤버십 포인트 이용 현황을 토대로 만든 빅데이터 정보를 일반에 공개했다. 다양한 업체에서 이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하도록 돕는 상생 차원에서의 결정이었다. SK텔레콤은 무슨 요일에 중국집·피자 배달 주문이 몰리는지, 서울 어느 지역에서 대리운전·콜택시를 많이 부르는지 등 10종의 정보를 공개했다. 하지만 당초 SK텔레콤이 공개하려던 데이터는 100종이 넘었다. 외국인이 선호하는 관광지, 연령·성별 모바일 인터넷 이용 행태 등을 준비했으나 현행법상 개인정보 유출로 제재받을 수 있다는 지적에 공개 범위를 대폭 축소한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개인정보에 대한 정의가 두루뭉술하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은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해’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개인정보로 간주한다. 개인의 이름·연락처·주소 등은 당연히 보호해야 하는 개인정보지만 사용자들이 스스로 공개한 주로 가는 곳, 좋아하는 음식, 관심사 등도 ‘쉽게 결합해’ 특정인임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해석될 경우 이를 공개하면 개인정보 침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기업협회 최민식 정책실장은 “법을 온전히 지키면 사업이 불가능하고, 어느 정도는 봐줄 것이라는 생각에 사업을 진행했다가는 나중에 큰 피해를 본다”며 “모호한 개인정보 개념 때문에 기업들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정보 수집 방식도 문제다. 국내에선 개인정보를 활용하려면 가입자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른바 ‘옵트인(Opt In)’ 방식이다. 반면 미국·일본 등은 개인정보를 수집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되 가입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옵트아웃(Opt Out)’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빅데이터 산업 육성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법무법인 정률의 정관영 변호사는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이 과정에서 빅데이터의 발달을 고려하지 못했고, 결국 옵트인 방식을 채택한 게 문제의 발단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호해야 하는 개인정보가 수시로 대규모 유출되는 사고가 생기고, 기업들이 모호한 규정 아래 다양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상황에서 빅데이터의 활용을 무한정 풀어줄 경우 사생활 침해 가능성도 커진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분석의 대상이 되는 원정보가 개인 식별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여러 개의 정보가 결합하면 누구인지 알게 될 위험성은 여전하다”며 “빅데이터 기술의 법적 허용 범위를 정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빅데이터 활용과 개인정보 보호가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인터넷법학회 이창범 박사는 “비교적 규제가 강한 유럽에서도 통계·과학·학술 목적에서의 이용은 허용한다”며 “공익적 가치가 큰 부분에서는 규제를 풀어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김정구 교수는 “빅데이터 기술은 이미 일상을 바꾸고 있지만, 법과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빅데이터의 투명성을 확보하면서 활용 범위를 넓힐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