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 사는 브라이언 스미스(70·가명)씨는 두통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 이 병원 의료진은 뇌졸중 초기 증상이 의심된다며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실시했다.
의료진은 이전에 뇌졸중으로 판정받은 2만명의 결과와 스미스씨의 MRI 영상을 다른 뇌졸중 환자들의 데이터 간에 차이점을 확인했다. 위험요소를 찾기 위해 나이와 평소 생활 습관, 뇌 질환에 걸리기 쉬운 유전체 분석도 실시했다. 뇌졸중 외에도 치매 3만명, 파킨슨병 1만 4000명 등 뇌혈관과 관련된 질환 정보를 함께 분석했다.
의료진은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스미스씨의 뇌 혈관이 유독 좁아지지 않고 뇌 회로 끊김도 적은 것을 발견했다. 뇌졸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1%에 불과한 낮은 위험도(low risk) 환자군에 속했다.
스미스씨는 적극적인 치료를 받으면 뇌졸중이 잠시 앓고 지나갈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운동을 좋아하고 술을 마시지 않는 평소 생활 습관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발견했다. 이런 결과를 검사 당일에 바로 알게 돼 서둘러 맞춤형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는 영국 보건부가 이달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보건의료 분야의 빅데이터 활용을 주제로 열린 ‘한영 미래포럼’에서 발표된 주요 활용 사례다.
의료계는 수년내 이 같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빅데이터 분석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이란 방대한 양의 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 의료보험제도(NHS)를 실시하는 영국은 2000년대부터 고령화와 의료비 급증 문제를 빅데이터로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일찌감치 이를 도입했다. 영국 보건부는 2010년 50만명의 질병 코호트(질병의 변화를 추적하는 통계분석)를 구축한데 이어 올해까지 50만명의 유전체 정보를 쌓고 있다. 일단 환자 정보가 쌓여야 의미있는 데이터를 발견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보건부는 빅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2013년 4월 별도의 빅데이터 기관인 ‘HSCIC(Health & Social Care Information Centre)’를 설립했다.
HSCIC는 영국 건강보험의 진료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병원 의료진에 분석 결과를 제공하고, 환자 치료를 위한 유용한 정보를 추출해낼 수 있게 한다.
뇌졸중 위험인자가 ‘고혈압’이라면 공통요소를 가진 환자들의 정보가 연결돼 유사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영국 의료진도 여러 병원의 검사결과를 확인 있는 ‘메모리클리닉’을 운영한다. 보통 일차 의료기관의 주치의가 환자의 영상검사를 실시하지만,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 연구진도 연구를 위해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데니스 챈 케임브리지대 임상신경과학과 교수는 “뇌 MRI 영상이 수만개 이상 모이면 뇌 혈관이나 회로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며 “뇌 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하거나 환자 증상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분석은 의료비 절감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질병을 빨리 예측해 치료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불필요한 치료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이 조 브리스톨대 의대 뇌과학중개연구센터장은 “전 세계적으로 인구 고령화와 의료비 폭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며 “의료비와 시간을 절감하기 위해 빅데이터 분석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관리본부, 국립암센터 등 보건의료 공공기관이 보유한 빅데이터의 가치있는 활용에 나섰다.
국립암센터는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청과 연계해 암 진단부터 치료까지의 생존율을 분석했다. 국립암센터는 최근 이런 분석 결과를 토대로 직장암, 유방암은 치료가 1달 이상 지연되면 생존율이 낮은 것을 발견했다. 의사 진료까지 장시간 대기해야 하는 대학병원 대신 지역병원 중심으로 암 치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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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검진을 통해 모은 100만명의 코호트를 민간 병원에 공개하기로 했다. 질병의 다양한 원인을 분석하고, 희귀 난치성 질환 치료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닉 톰린슨 영국 보건부 국제보건국장은 “보건의료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환자 치료에 의미있는 데이터를 발견하고 정확하게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며 “환자가 지불한 의료비를 더욱 의미있게 쓸 수 있고 결국 의료비까지 줄이게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