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클라우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의료기관의 전자의무기록을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을 통해 보관·관리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한다.
환자의 진료기록부 등을 전자문서로 작성한 전자의무기록은 현행 의료법 관련 규정에 따라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백업저장시스템', 즉 병원 내부에만 보관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런 규정을 바꿔 병원 외부에서도 전자의무기록을 보관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진료기록 외부보관 허용이 개인의료정보 유출 위험과 원격의료 등의 의료산업화를 위한 규제 완화 의도가 짙다며 반대하고 있어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행정자치부 등 관계부처와 정부3.0추진위원회는 지난 1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창조경제와 K-ICT전략의 성공적 추진과 소프트웨어 중심사회 실현을 위해 'K-ICT 클라우드 컴퓨팅 활성화 계획'을 확정해 보고했다.
클라우드 컴퓨팅 활성화 계획에 따르면 클라우드 친화적 제도개선을 위해 의료, 교육 등 각종 법령에서 클라우드 이용을 사실상 제한하는 규제를 지난 10월 발족한 '민간 클라우드 규제개선 추진단'을 중심으로 집중 발굴하고,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이보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올해 초부터 전자의무기록을 병원 내에서만 저장·관리토록 한 의료법 하위법령을 고쳐 외부에서도 보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해 왔다.
지난 7월에는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진료기록의 보존 장소 선택권을 명시적으로 부여하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외부 보관시 필요한 시설·장비 구비 의무를 규정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 의료단체를 중심으로 의견조회까지 실시했다.
복지부가 마련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기관 외부의 전자시스템에서 전자의무기록을 관리·보존할 경우 ▲전자의무기록의 생성 및 보관을 위해 필요한 기능을 갖춘 장비 ▲전자의무기록의 이력관리를 위해 필요한 장비 ▲전자의무기록의 복제·저장에 필요한 백업 장비 ▲네트워크 및 시스템 보안에 관한 설비 및 장비 ▲시스템 운영에 필요한 장비 ▲별도의 출입통제구역의 설치와 그 장소의 통제 및 감시를 위한 설비 ▲재해예방에 관한 설비 등을 갖춰야 한다.
또 '전자의무기록의 의료기관 외부보관시 필요한 시설·장비 기준안'을 통해 ▲전자의무기록의 생성 및 보관을 위해 필요한 기능을 갖춘 장비 ▲전자의무기록의 증적관리를 위해 필요한 장비 ▲전자의무기록의 복제·저장에 필요한 백업 장비 ▲네트워크 및 시스템 보안에 관한 설비 및 장비 등에 관한 주요 기능 및 설비 요건 등을 명시해 놓았다.
복지부는 진료기록의 외부보관 활성화를 위해 의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일정 유예기간 내 법령 등에서 정한 보안조치를 취하는 경우 보조금 지원 또는 수가 가산을 검토할 방침이다.
의료계 외부보관에 반대...복지부도 처음에는 "대규모 정보유출 우려" 부정적 입장
당초 복지부는 전자의료기록의 외부 보관에 반대 입장이었다.
복지부 의료자원과는 지난해 5월 '의료 전자의무기록 관리 보존방법 개선' 건의에 대한 부처의견을 통해 "외부 저장시스템의 활용은 정보보호 보다는 정보관리의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외부 보관시스템의 활용을 통해 진료정보의 보안을 강화하는 방안은 최적의 대안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한 "의료정보가 IDC를 통해 통합관리.저장되는 경우 개인정보의 대량유출 위험성이 높다"며 "외부통합시스템에서 관리되는 정보가 유출될 경우의 피해는 개별 의료기관의 정보가 유출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장기적 검토가 필요한 과제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작년 12월 경제단체 부단체장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차관이 참여하는 규제기요틴 '민관합동 회의'를 통해 114건 규제기요틴 과제를 발표하면서 '의료기관 진료기록 관리·보관의 편의성 제고'건이 포함되자 돌연 입장을 바꿔 진료기록 외부 보관을 위한 규제 개선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6월에는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등을 대상으로 전자의무기록의 병원 외부 보관에 대한 개선방안 설명회도 개최했다.
의료계는 전자의무기록의 외부보관 허용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의사협회와 서울시의사회는 "환자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근본 목적의 실현을 위해 전자의무기록을 의료기관 외의 서버에 별도 보관 및 사기업 운영 소프트웨어 판매 계획을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 명확히 반대의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는 가뜩이나 진료정보 유출 사고가 빈번한 데 전자의무기록의 외부보관이 허용되면 자칫 개인건강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의료정보는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로 철저히 보호되어야지 공유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며 "이미 한국에서는 의료정보 유출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정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향후 더욱 심각한 유출사고를 정부가 부추기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우려했다.
▲ 분당서울대병원 지난 2011년 국내 병원 중 최초로 클라우드 기반의 모바일 진료시스템을 구축했다. 현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당시 병원장으로 재직하며 의료정보화를 적극 추진했다. 사진 출처: 분당서울대병원
전자의무기록을 병원 외부에 보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원격의료 활성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등에서는 클라우드 기반으로 환자 정보를 공유하는 원격의료 시스템 구축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분당서울대병원이 지난 2011년 8월 가장 먼저 클라우드 기반의 모바일 진료시스템을 구축했다. 현 정진엽 복지부장관이 당시 분당서울대병원장으로 재직하며 클라우드 기반의 모바일 진료시스템 구축을 주도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의료정보를 가장 앞장서 보호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이를 완화하려는 핵심적 이유는 바로 원격의료 추진이다"며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된 바 없고 국민의 의료정보까지 유출될 원격의료가 의료기기 및 통신기업의 이윤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