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超)긍정의 힘. 엔에프랩 창업자 나세준 대표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직관적으로 느낀 것은 어디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극단적인 긍정적 마인드였다.
그는 두 살 때 브라질 상파울루로 이민을 갔다. 그때가 1975년이었다. 그리고 그는 2009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35년의 시간을 그는 브라질·미국·영국 등 해외에서 보냈다.
1970년대 중반 한국은 철저한 개발도상국이었다. 사진이나 기록으로만 추정해도 당시 한국은 무척이나 못 사는 나라였다. 이 엄중한 시기에 브라질로 이민을 갔으니 나 대표의 부모에게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사건이나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물론 그 스토리는 듣지 못했다.
그 옛날 이민을 갔으니 브라질에서의 삶이 매우 고단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으로 넘어와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엔 끼니를 해결하는 게 큰일이었죠. 실제로 끼니를 거를 때가 숱하게 있었고요. 맥도날드 햄버거가 그땐 정말 비싼 음식이었어요.” 담담하게 말했지만 타향에서 재정적인 문제로 겪을 어려움은 웬만큼 다 겪은 것 같았다.
미국 대학에서 생화학(Biochemistry)을 전공한 그는 결혼한 뒤 부인과 둘이 영국 런던으로 떠났다. 직업도 없는 상태였다. 우선 직장을 구하는 게 순서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는 아무 대책 없이 무작정 영국으로 날아갔다. “그냥 영국에 가보고 싶었어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곳을 경험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어차피 영어를 쓰면 되니까 언어 문제도 없었고요.”
영국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채 안 돼 그는 아카마이(Akamai)에 입사했다.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CDN) 분야의 글로벌 업체인 아카마이에 들어가면서 그는 처음에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얼마 안 돼 비즈니스 쪽으로 전환했다. “상품 기획에서부터 영업·마케팅까지 여러 가지 일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당시 아카마이도 벤처기업이었고 막 성장하고 있던 회사였어요. 새로 개척해야 할 일들이 많았죠. 그래서 그런지 저는 엔지니어로 일하는 것보다 비즈니스가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엔에프랩이 현재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기업들에 빅 데이터 분석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35년간의 남다른 삶
아카마이 본사가 있는 미국 보스턴으로 돌아오고 얼마 후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아카마이가 아시아 지역에서의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싱가포르에 아시아 총괄 지사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싱가포르 사무소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런데 그는 가족들과 상의 끝에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회사에 통보하게 된다. 이왕 아시아 지역에서 일할 것이라면 조국인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 시장을 개척하는 업무도 하고 자녀들에게 한국에서 지낼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이 요구를 수용하면서 그는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2009년이다. 한국을 떠난 지 서른다섯 해째가 되던 때였다. 그는 2~3년 정도 한국에서 일한 뒤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의 인생은 다시 일대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아카마이 한국 지사장을 맡은 나 대표. CDN 계약을 체결하고 업무 관련 협조를 위해 다양한 회사들을 방문하던 중 이문수를 만나게 된다. 서강대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이었던 대학생 이문수는 병역특례로 군복무를 대신하다가 아이디어가 생겨 P2P 방식의 인터넷 네트워크를 이용한 방송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개발 능력이 있었던 그는 CDN 쪽 분야의 사업도 조금씩 하다가 나 대표를 만난 것이다.
“깜짝 놀랐죠. 이렇게 뛰어난 실력을 가진 팀을 만나다니요.” 이들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한 나 대표. 하지만 CDN 분야에서 사업을 하는 것보다 다른 분야에서 한다면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CDN은 이미 아카마이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강력한 업체가 있는데 그 분야에 뒤늦게 뛰어들 필요가 없죠.”
이문수와 뜻이 통한 나 대표는 2010년 더욱 자주 만나 빅 데이터에 대해 토론했다. 반도체에 무어의 법칙이 있다면 빅 데이터에도 그런 법칙이 있다는 게 나 대표가 내린 결론. 즉 1년마다 빅 데이터가 2배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데이터는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게 기업들이 이 데이터를 활용할 방법이 별로 없는 게 현실이었다.
사실 그가 빅 데이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CDN 분야의 사업을 하는 아카마이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대용량 콘텐츠를 네트워크에서 효율적으로 분배·전송하는 것을 계속해 오면서 데이터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모바일이 되면서 이런 양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도 분명했다.
“빅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그런 시대가 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빅 데이터 시대가 곧 온다고 봤을 때 지금의 시장이 너무나 초기 단계라서 뛰어들기 좋은 시점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사실 이를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실력 있는 개발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 분야에서 믿고 함께 고민할 사람이 없었다면 생각을 이토록 발전시키지 못했을 겁니다.” 결국 2011년 나 대표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당초의 계획을 변경, 한국에서 이문수와 함께 창업을 하기로 했다. 이문수가 친구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던 스타트업을 엔에프랩으로 이름을 바꾸고 규모를 확장했다.
빅 데이터 분석 플랫폼 ‘펠로톤(Peloton)’을 만들기 위해 지난 1년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빅 데이터 분석의 어려움은 이를 처리하는 과정이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펠로톤은 이런 복잡한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그래서 데이터만 입력하면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되는 그런 시스템으로 개발됐다. 나 대표는 “펠로톤은 하둡에코시스템과 같은 특정 기술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다양한 기술을 지원할 수 있는 빅 데이터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펠로톤은 기업이 구축한 빅 데이터를 관리하고 모니터링하는 것도 가능하고 모든 데이터 유형에 대한 실시간 분석도 제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복잡한 기능을 익힐 필요 없이 쉽게 쓸 수 있다는 게 최고의 장점이다.
엔에프랩은 3월 7일 펠로톤을 출시했다. 현재 가장 어려운 점은 기업들에 빅 데이터 분석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것.
“빅 데이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지 비슷한 얘기만 꺼내도 손사래를 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게 필요 없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고객들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반응이 어떤지,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어떤 반응이나 분석이 나오는지 실시간으로 알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다 ‘그렇다’고 대답해요. 빅 데이터를 보다 쉽게 접근하고 이를 통해 얻는 효용이 얼마나 큰지를 알리는 게 우선 당면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빅 데이터를 보다 쉽게 접근하는 법
나 대표에게 왜 창업을 했는지 물었다. 외국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그는 한국에서의 삶이 결코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아직도 한글로 글을 쓰는 게 서툴다고 하니 오죽하랴. 그런 그가 한국에 남는 것을 택하고 원래 몸담고 있었던 대기업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일을, 그것도 창업이라는 방식으로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불편한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뜻한다.
“돈이 없어본 경험을 숱하게 했죠. 그래도 다 살아지더라고요. 그리고 돈이 없을 때 힘들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후회하지는 않아요. 돈이 없는 것보다 도전하지 않아 후회하게 되는 게 가장 두려웠습니다.”
결국 빅 데이터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먼저 그의 인생을 바꾼 셈이 됐다. 한 번 그런 확신이 드는 순간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된 것은 아닐까.